글은 상태를 싣고

요즘 글이 안써진다. 안써지니 안쓰고, 무기력에 더 기력을 뺏겨갔는데 어제 그 원인을 찾았다.

어제의 글쓰기모임에서는 다양한 감정 중 몇가지를 골라서 정의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적당한 시간동안 각자의 글을 적어 읽는데, 사람들이 고른 감정은 저마다의 요즘을 반영하고 있었다. 
 업무스트레스가 많다던 한 분은 허무하다 불안하다 부담스럽다 속상하다 답답하다 등을 골라 적다가 문득 부정적이기만 한 문장들에 놀라 설레다와 같은 문장을 급하게 끼워버렸다고 했다. 그 글에는 그녀가 고른 감정들처럼 부정적이고 답답한 심경이 묻어있었다.

 다른 한 분은 설레다 초조하다 예쁘다 사랑스럽다 섭섭하다 같은 감정들을 골랐는데 누가 들어도 사랑에 빠진사람의 편지였다. 메신저의 1이 없어지지 않아 초조하고, 이유를 말 할 수 있는데 물어보지 않을때 섭섭하다고. 결국 글의 마지막은 그래도 설레고 좋다로 끝을 맺었다. 우리는 한동안 그가 사랑에 빠진 이야기를 묻고 놀리며 질문공세를 쏟았다. 사랑에 빠진사람에게서 나오는 특유의 설렘과 뜬 표정. 민망함에 자꾸 차례를 돌리려 하던 그의 글은 그런 감정들을 온전히 담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나는 처음 주제를 듣고, 마음사전에서 글감이 나올만한 감정들을 찾았다. 그간의 경험에서, 내가 가진 정보 내에서 추릴 수 있을 만 한 감정들. 
골라낸 감정은 귀엽다 그립다 보고싶다 심술난다 외롭다 였다. 이렇다할 공통점이 보이지 않는다. 그냥 듬성듬성 내 기분폴더에서 오름차순으로 나열된 파일들을 손에 잡히는대로 대충 집어 적어냈기 때문이였다.

나는 글에 솔직할 수 없었다.

무기력하고 불완전한 상태, 내가 나를 이해하거나 믿지 못하는 상태에서 나는 그저 겉도는 감정을 모른체하고 잘 쌓여있는 적당한 지난 경험들 옆에만 꼭 붙어다니는 방관자였다.
나를 헤아리지 않은 글에서는 남에게 전달할 수 있는 걸죽함은 기대 할 수 조차 없다.

계속 우울해지기만 할 글들이 쌓여가는게 싫어서 그랬다. 남에게 보이는 외곽을 신경쓰느라 정작 본인은 내팽겨둔 채 자꾸만 딱딱하게만 써내려져갔다. 
한 입 베어물어도 니맛도 내맛도 아닌 퍽퍽한 글. 성의가 있어 뱉지도 삼키지도 못 할 그런 글. 

난 단지 내 상태를 글에 싣기 싫었던 거였다. 몇 번 보지 않을 모르는 사람 앞에서라도 괜찮은 사람으로 남기를, 부족한 사람으로 내비쳐지지 않기를. 
끊임없이 내가 만들어낸 시선은 글도, 스스로도 갈피를 잡지 못하게 흔들고 있었다.
글과 함께하는 날들은 보다 나을거라고 믿었는데. 어쩌면 나를 잡기위한 보여주는 글들이 나와 글 사이를 멀어지게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 쓴 글도 개판이다. 이 글에는 그럴듯한 엔딩이 없다. 여전히 나는 솔직하지 않은 글을 쓸지도 모른다. 계속 모르는 니맛도 내맛도 아닌 그런 글을 하나 더 늘린다. 


댓글

가장 많이 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