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 『바깥은 여름』
작년에 김애란 작가의 비행운을 읽고는 뛸듯이 기뻤다. 섬세하고 소박하게 옆구리를 찌르는 문장들은 나를 잘 아는 단짝친구를 만난 듯 공감하고 감응하게 해주었다.
비행운을 읽었을 때가 바깥은여름이 갓 나온 때였는데, 바깥은여름을 읽기 전에 비행운을 먼저 찾아 읽은 것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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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것을 접할 때가 그것과 내 운명과 관계를 좌우한다고 믿는 편인데, 계절에 관해서도 그렇다. 남들 다 본 '500일의 썸머'가 보고싶었지만 한여름이 될 때까지 참았고, 이터널선샤인은 코시린 겨울이 되고서야 비로소 볼 수 있었다. '연애의발견'은 봄에, '괜찮아사랑이야'는 여름에, '풍선껌'은 겨울에 다시 정주행했다. 그런 사소한 집착과 인내가 즐거웠다. 내가 차곡차곡 모아 주머니에 저장해두는 한 계절의 상이었다. 마찬가지로 비행운을 지난 가을에 읽은 뒤 줄곧 이번해 여름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반팔을 꺼내 입기 시작하자 이 단정한 푸른 표지가 떠올랐고 약간은 이른감이 있지만 교보문고에서 이 책을 샀다. 책을 사서 돌아오는 길은 더할나위없이 들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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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 기대감이 들떴다는 거지 김애란작가의 작품은 가볍거나 즐거운장르에는 전혀 속하지 않는다. 세상의 모서리나, 어디 끝쪽에 달랑달랑 붙어있어 존재감을 알기도 힘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누군가의 상실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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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운을 읽었을 때가 바깥은여름이 갓 나온 때였는데, 바깥은여름을 읽기 전에 비행운을 먼저 찾아 읽은 것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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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것을 접할 때가 그것과 내 운명과 관계를 좌우한다고 믿는 편인데, 계절에 관해서도 그렇다. 남들 다 본 '500일의 썸머'가 보고싶었지만 한여름이 될 때까지 참았고, 이터널선샤인은 코시린 겨울이 되고서야 비로소 볼 수 있었다. '연애의발견'은 봄에, '괜찮아사랑이야'는 여름에, '풍선껌'은 겨울에 다시 정주행했다. 그런 사소한 집착과 인내가 즐거웠다. 내가 차곡차곡 모아 주머니에 저장해두는 한 계절의 상이었다. 마찬가지로 비행운을 지난 가을에 읽은 뒤 줄곧 이번해 여름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반팔을 꺼내 입기 시작하자 이 단정한 푸른 표지가 떠올랐고 약간은 이른감이 있지만 교보문고에서 이 책을 샀다. 책을 사서 돌아오는 길은 더할나위없이 들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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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 기대감이 들떴다는 거지 김애란작가의 작품은 가볍거나 즐거운장르에는 전혀 속하지 않는다. 세상의 모서리나, 어디 끝쪽에 달랑달랑 붙어있어 존재감을 알기도 힘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누군가의 상실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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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이야기_ 입동
짐을 푼 첫날부터 어머니는 집안 곳곳을 의욕적으로 쓸고
닦았다. 우편물을 정리하고, 먼지 낀 선풀기를 분해해 일일이
날개를 닦고, 시든 고무나무에 물을 줬다. 돼지고기와 메추리알을
섞어 간장에 조리고, 멸치와 꽈리고추를 볶아 집안에 매운 내를 풍기고,
김을 굽고, 깻잎을 재우고, 냉동실을 정리했다. 아내는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종종 무기력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나이
드신 양반의 악의 없는 참견과 잔소리도 묵묵 감내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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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렇게 사소하고 시시한 하루가 쌓여 계절이 되고, 계절이 쌓여 인생이 된다는 걸 배웠다. 욕실 유리컵에 꽂힌 세 개의
칫솔과 빨래 건조대에 널린 각기 다른 크기의 양말. 앙증맞은 유아용 변기 커버를 보며 그렇게 평범한
사물과 풍경이 기적이고 사건임을 알았다. 아내와 나는 식탁에서 영우를 먹이고, 혼내고, 어이없는 말대꾸에 그만 허탈하게 웃어버리고, 그 와중에 권위를 잃지 않으려 재빨리 엄한 표정을 짓곤 했다. 영우는
거기서 젓가락질을 배우고 음식을 흘리고 떼쓰고, 의자 아래로 기어들어가고, 울고, 종알종알 분홍 혀를 놀려 어여쁜 헛소리를 했다. 그러니까 거기 사인용 식탁에서. 식탁과 맞붙은 산뜻한 올리브색 벽지
아래서. 집 앞 어린이집에서 보내온 복분자액은 바로 거기 튄 거였다.
-두번째 이야기_ 노찬성과 에반
찬성은 그곳에서 새소리와 바람소리, 자동차 배기가스와 어른들의 하품을 먹고 자랐다. 환한 대낮, 차 안에서 일제히 잠든 이들은 모두 피로에 학살단한 것처럼 보였다. 혹은
졸음 쉼터 자체가 자동차 묘지 같았다. 찬성이 떼를 쓰거나 큰 소리로 울면 할머니는 입술에 손을 대며
무섭게 다그쳤다. 당시 찬성이 맡은 가장 중요한 일은 잘 크는 것도 노는 것도 아닌, 어른들의 잠을 깨우지 않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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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너는.. 노찬성이고?
-네? 네…
찬성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성과 이름이 같이 불릴 때 좋은 일이 일어난 경우는 거의 없었다. 교무실에서도 그렇고, 아버지가 입원한 종합병원에서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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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이야기_ 건너편
이날 두 사람은 평소보다 달게 잤는데, 저녁상에 오른 나물 덕이었다. 도화는 밤새 내장 안에서 녹색 숯이
오래 타는 기운을 느꼈다. 낮은 조도로 점멸하는 식물에너지가 어두운 몸속을 푸르스름하게 밝히는 동안
영혼도 그쪽으로 팔을 뻗어 불을 쬐는 기분이었다. 잠결에 자세를 바꾸다 도화는 속이 편하다는 느낌을
몇 번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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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 크리스마스 선물 주려면 일찍 들어가야 한다’ 고
엄살인지 자랑인지 모를 푸념을 했다. 이수는 크리스마스이브에 동기들과 겉도는 대화나 하며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긴 세월 각자 바쁘게 살다보니 우정도 추억도 희미해져 이제는 어떤 친구도 도화만큼
편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거절한 명분도 마땅찮아 왁자지껄 앞장서는 무리를 엉겁결에 따라 나서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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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는 동오가 최근 커피숍을 냈다 망한 걸 알고 있었다
직접 연락하지 않아 도 그런 소문은 귀에 잘 들어왔다. 이수는 자기 근황도 그런 식으로 돌았을지 모른다고
짐작했다. 걱정을 가장한 흥미의 형태로, 죄책감을 동반한
즐거움의 방식으로 화제에 올랐을 터였다. 누군가의 불륜, 누군가의
이혼, 누군가의 몰락을 얘기할 때 이수도 그런 식의 관심을 비친 적 있었다. 경박해 보이지 않으려 적당한 탄식을 섞어 안타까움을 표한 적 있었다. 그
자식 공부 잘했는데. 그러니까 걔가 그렇게 될 줄 어떻게 알았어. 인생
길게 봐야 하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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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화는 잘 개어놓은 수건처럼 반듯하고 단정한 여자였다. 도화는 인내심이 강했고, 인내심이 강했기 때문에 쾌락이 뭔지 알았다.그리고 이수는 도화의 그런 몸을 사랑했다. 무뚝뚝한 도화의 살갗 위로
수건 올이 살아나듯 오스스 소름이 돋아날 때 이수는 기쁘고 다급했다. 도화 역시 이수의 담백하게 마른
몸과 은은한 막걸리 향이 나는 겨드랑이, 장난으로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금방 딱딱해 지는 팥알만한 젖꼭지를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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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를 둘러보니 족히 이삼백 명은 넘어 보이는 이들이
너른 홀에 앉아 일제히 무언가를 씹고 삼키며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 방금 전 막 숨이 끊기 생선
대가리가 넋이 나간 얼굴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수가 애써 침착한 표정으로 작은 간장그릇에 고추냉이를
풀었다. 생와사비이면 더 좋았을텐데. 이십오만원짜리 회라면
의당 그래야 하지 않나. 아쉽고 섭섭한 마음을 누르며 젓가락을 놀렸다.
… 이수가 회 한 점을 집어 입에 넣었다. 자신의 선택에
실망하지 않으려 오물오물 신중하게 생선맛을 살폈다. … 도화도 천천히 턱관절을 움직였다. 두 사람은 이런 소비가 꽤 익숙한 사람인 양 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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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동작구 노량진동 안에서 여러 번의 봄과 겨울을
난, 한 번도 재철을 만끽하지 못하고 시들어간 연인의 젊은 얼굴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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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번째 이야기 _ 침묵의 미래
연민도, 경멸도, 호기심도 없는 얼굴로 이런저런 쓸데없는 말들을 늘어 놔 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곳 사람들은 ‘혼자’라는 단어를 닳아 없어질 때까지 만지고 또 만졌다. 몸에 좋은 독이라도
먹듯 날마다 조금씩 비관을 맛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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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번째 이야기 _ 풍경의 쓸모
카페 천장 모서리에 달린 스피커에서 끊임없이 댄스가요가
흘러나왔다. 누군가 양동이에 소음을 담아 우리 머리 위에 쏟아붓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옆자리의 학생들이 몇십 분째 누군가를 맹렬히 헐뜯는지라 나는 그만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걔가? 그 교수님이랑? 어머, 어떻게 그래? 타인이 아닌 자신의 도덕성에 상처 입은 얼굴로 놀란
듯 즐거워하고 있었다. 나도 잘 아는 즐거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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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집에서 미리 준비해왔을, ‘대화에서 용건을 뺀 나머지 말’을 다 하고 난 뒤 난처해했다. …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한겨울, 방 한쪽에 잘 개어놓은 이불 같은 사람. 반듯하고 무겁고 답답한 사람.
-여섯번째 이야기 _ 가리는 손
한동안 나 자신이 비리고, 뜨겁고, 미끌미끌한 덩이로 느껴졌다. 이름이 지워진 몇십 킬로그램짜리 영양공급 팩이 된 기분이었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나를 그렇게 대했다. 그게 격려나 존중의 형태였대도 그랬다, 영화나 드라마 속 산모는 내색 않던데. 나는 수유가 참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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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배포되는 ‘이달의
식단’은 전교생 중 어떤 아이도 버리지 않는 유일한 가정통신문이었다.
한 아이는 그걸 무슨 책처럼 만들어 소중히 갖고 다녔고, 또 어떤 아이는 비닐 파일에 넣어
책상에 붙여놨다. 먹을 것을 향한 사춘기 아이들의 집념은 대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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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 도우미 이야기를 들으니 아이가 속한 세상이 염려되지만
참고 내색 않는다. 애가 어릴 땐 집 현관문을 닫으면 바깥세상과 자연스레 단절됐는데, 지금은 그 ‘바깥’을
늘 주머니에 넣고 다녀야 하는 모양이다.
-일곱번째 이야기 _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내 몸이 다 자라기 전, 적어도 중학생 때까지 나는 엄마를 그렇게 올려보는 일에 익숙했다. 그런
시간이 있었다. 사람 얼굴을 보려면 자연스레 하늘도 같이 봐야 하는 아이들을 길러내는 세상의 높낮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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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곤 당신이 늘 눕던 자리 쪽으로 몸을 틀어, 당신 머리 자국이 오목하게 남아 있는 베개를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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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잡하거나 사무적인 표정을 한 우편물들 사이로 분홍빛
봉투가 코를 내민 게 눈에 띄었다.
“겁이 많은 지용이가 마지막에 움켜쥔 게 차가운 물이 아니라 권도경 선생님 손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놓여요. 이런 말씀 드리다니 너무 이기적이지요?"
가장 와닿았던 에피소드는 세번째, 건너편이였다. 줄 친 문장도 접은 모서리도 많다. 이수와 도화의 오래고 바랜 마음과 노량진에서의 생경한 태도, 제철에 관한 언급들이 좋았다.
'입동' 과 '어디로 가고싶으신가요'에는 자식과 남편을 잃은 화자가 주인공이다.
한번은 아내가 바퀴 달린 장바구니를 들고 나갔다 십
분 만에 돌아 왔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아내는 사람들이 자길 본다고,
나는 안그러냐고 했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묻자 아내는 사람들이 자꾸 쳐다본다고, 아이 잃은 사람은 옷을 어떻게 입나, 자식 잃은 사람도 시식코너에서
음식을 먹나, 무슨 반찬을 사고 어떤 흥정을 하나 훔쳐본다고 했다.
_ '입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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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식 웃음이 났다. 오랜만에
나온 소리였다. 나는 그 웃음에 편안함을 느꼈다. 적어도
그 순간 웃고 난 뒤 주위를 둘러볼 필요가 없었으니까.
… 현석이 그 사람 소식을 모른다는 데 충격을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이날만은 불필요한 동정이나 배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겠다 싶었다.
_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중
두 에피소드에서 비슷한 감정선이 보였다. 상실한 사람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악의없는 연민과 관심이 그들의 상실에 얼마나 큰 무게를 더하는지. '입동'의 아내는 사람들이 쳐다본다고 장을 보러 나갔다가 십분만에 돌아왔다.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의 명지는 아무도 보지 않는 시리와의 웃음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타지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서 남편의 부고소식을 알리지 않는다. 상실의 무게는 다른 시선이 더한다. 나또한 그런 무지한 관심을 내비치진 않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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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찬성과 에반'을 읽을때는 엉엉울었다. 어느순간 눈물이 툭 떨어지고 찬성의 미숙한 이별과 상실에 꽉막힌듯한 답답함과 연민을 동시에 느꼈다. 어딘가 연민을 느끼기에는 맑고, 낙천적으로 보기엔 너무도 깊은 한 죽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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