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 수 있는 밤] 3.전 세입자의 독백

아래 내용은 글쓰기모임 <쓸 수 있는 밤>에서 '내일부터 이 집에 살게 될 당신에게' 를 주제로 적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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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동네에 살았다. 집을 방으로 두고, 동네 전부에 매달 월세를 지불하는 양 동네 전체에서 지냈다.

 동삼동과 두번의 내손동을 거쳐 살고는 이 지긋지긋한 고가대로나, 손뻗으면 닿을 옆건물에서 벗어나고자 뚜렷한 목적없이 혼자 여기에 자리를 틀었다. 걸음이 나보다 세배는 빠른 부동산 어저씨를 쫒아간 곳에 펼쳐진 두개의 큰 창. 마침내 그 집은 유혹에 넘어오기 딱 좋은 동반자를 찾았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그 집에 활기를 불어넣어 줄 의무가 있었다. 사랑스러운 집에 들어사는 2년께동안 두 창과 베란다 통창은 항상 활짝 열려있었다. 그러면 그들은 항상 밖을 끌어다 내 품안에 안겨주었다.



어느 이른 오후엔 넓직한 창틀에 몸을 늘이고 바람을 맡는 고양이를 가만히 보았다. 금요일 밤이면 달뜬 목소리의 행인들의 이야기를 엿들었다. 누군가의 이별했고, 즐거웠으며, 속상하거나 시덥잖은 이야기로 웃는 소리가 담을 타고 넘어왔다. 가끔 이른 새벽에 눈을 뜨는 날이면 한번도 보지못한 그림자가 방을 비췄다. 살랑거리는 식물의 그림자, 막 뜨기 시작한 햇살이 비추는 어색한 방에 멍하니 앉아 있기도 했다. 저녁에는 어떤 집의 늦은 끼니냄새가 올라왔다. 불고기나 된장국, 따뜻한 밥냄새가 집안으로 가득 찼다. 그러면 그 온도의 냄새에 기분이 좋아지기도, 그날의 우울에 따라 외로워지기도 했다.
비오는 날이면 향을 피우고 창틀에 앉아 책을 읽었다. 가끔 책을 적시는 물방울이 다정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두개의 이중창은 동네와 나를 연결시켜 주었다.



 밖으로 나가도 내가 사랑할 것들이 많았다. 길건너에 자리한 먹자골목에 가는길에 오늘은 어떤 술에 어떤 안주를 먹을까, 1차와 2차는 어떻게 구성하는게 좋을까 설레었다. 계절을 지내며 동네 사장님들과 친분을 쌓았다. 자주가는 골뱅이집 사장님내외는 늘 '다혜씨 왔어요' 하며 웃음지어 주셨고,
내 취향을 아는 곱창집 삼촌은 서비스로 사이다 대신 소주를 건넸다.
얼싸하게 취한 날이면 공원을 걸었다. 잦은 음주에 죄책감이 드는 날이면 러닝을 나갔다.
밤에는 물가를 따라 달리고 낮에는 자전거를 타고 장을 봤다.
마음이 어지러운 날에는 계단을 걸어올라 옥상에서 세상을 낮게 내려다 보았다.
나의 아주 큰 집을 내려다보는 일이였다.

 이제 나는 집을 떠나게 되었다.

딱 두번, 고집있게 열어놓은 창문안으로 비가 들어차 흘렀다. 바람은 벽지를 바짝 말려주었지만 그 얼룩을 지우지는 못했다.
처음 집에 들어왔을때 베란다 목재천정에 천정형 빨랫대를 달겠다고 주인집 아저씨에게 도움을 청했다. 앙카를 이용해 고정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은 봄에 신나게 이불을 널다 빨랫대가 떨어져 머리에 혹이 났다. 빨랫대는 치웠지만 내 혹과 못자국을 메꾸지는 못했다.
벽에 이것저것을 붙였다. 그때의 좋아하는 것들, 갓 인화한 필름사진들, 엽서나 포스터를 시도때도 없이 붙였다 띄었다. 처음에는 별뜻없이 접착력이 좋은 접착폼으로 붙였다가 벽지가 살짝 띄어졌다. 풀로 잘 붙여놨지만 아예 그 티를 감추지는 못했다.

다 한 것 같으나 못한 것이 많다. 늘 떠날때가 되면 아쉬운것들이 늘어난다. 이 자리에 나 다음으로 지낼 당신도 내가 느꼈던 이곳만의 소소한 행복을 느꼈으면 좋겠다. 내가 미쳐 다 감추지 못한 흔적들이 불만이라면 나에게 연락을 줬으면 한다. 뒤늦게라도 생긴 동네친구의 꾸지람을 기꺼이 듣고싶다. 당신이 이 쪽지를 발견해 내 이야기를 들어줘서 기쁘다. 지내는동안, 저 큰 창들과 동네를 사랑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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