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의 저주

특별함이 주는 서운함은 배로 크다.
나에겐 생일이 그런데, 그래서 매년 생일이 다가오면 신경이 곤두서지고 불안해 지곤 했다.
내 안의 목소리던 외부의 시선이던 '그래도 오늘 생일인데..'는 늘 싫다.
반드시 특별해야 할 것 같은 날에 특별하지 않은 나는 비참해 보인다. 그 쯤 되면 에이, 생일같은건 왜 있어가지구, 난 어떻게 살아왔길래 생일날 이렇게 외로운지, 그런 생각들에 잠겨 버리는 것이다. 그런 이유들로 주말부터 나는 비참해지기 시작했다.
생일날 혼자 보낼걸 걱정하는 친구들의 눈빛이 싫었다. 그래서 같이 지내'주는' 건 더더욱 싫다.
그 상태로 생일까지 이어진다면 끔찍할게 눈에 훤해서 문득 전날 새벽 급하게 속초여행을 계획했다. 찾아주는 사람없는 생일이 될 바에야 찾아 올 수도 없게 떠나버리자!! 하고 호기롭게.
준비하다보니 들떠서 신나있는데, 아는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속초여행을 간다는 말에 "혼자?" "응 혼자!" 뒤에 애매하게 놀란 듯한 잠깐의 침묵.
전화를 끊고 나는 다시 흥을 뚝 끊고 우울해졌다. 아, 정말이지 나는 생일날 얼마나 유치해 지는지-
 속초 여행이 불발되고, 니가 속초로 가버렸으면 속상했을거라며 이름도 못 외운 꽃다발을 건넨 조금은 어설픈 친구와 저녁을 보냈다.
즐거운 생일 이었다. 그보다도 생일임을 잊을 정도로 신나게 해준 사람이었다.
내가 생일에 대한 트라우마에 대해 얘기하자 그는 공감했다.
별다른 수식어 없이 곧 그 생일의 특별함과 실망에서 벗어날 수 있을거라 말해줬고,
생각보다 큰 위로가 됐다.
이제 스물넷이다. 다음 생일은 떳떳하게. '생일 축하해. 생일인데 오늘 뭐해?' 에 당당하게 생일임을 잊어도 좋은 날을 보내길.

* 생일날 혼자 여행은 버킷리스트에 달아놨다. 언젠가 꼭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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