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희

2017년 4월 25일

"Just plan to be surprised" - Dan in real life


중학생 때 주희라는 친구가 있었다.
주희는 글씨를 잘 썼다. 곧기보다는 귀엽고 안정적인 글씨였다.
어느날 그 글씨를 볼때마다 반응하던 나에게 주희가 전수해준 '글씨비법'이 있다.
획을 반대 방향으로 쓰는 것.
그러면 글씨가 서툴러 귀여워진다며 주희는 열심히 시범을 보여줬고, 나는 신나서 따라했던 기억이 난다.
8년 전 일인데 나는 아직도 가끔 그 방법을 쓰고있다.
평소와는 다르게 직은 아래에서 위로, 평은 우에서 좌로 쓰면 초등학생이 꽤 정성들여서 또박또박 적은 것 같은 필체가 된다.
좀 느리지만 어설픈 이 글씨체가 마음에 들어 종종 써오던 것이 여태 습관으로 남았다.

어설프고 부족한 것에 정감을 느낀다. 완벽한걸 꺼려하는게 아마 나와는 멀고먼 얘기여서 그런가보다.
삐뚤어진 글씨나 간결하고 어설픈 그림체, 양말 한 짝이 없는 수면등 같은 것들. 완벽하진 않지만 그래서 귀엽고 매력있다.
 삶에 있어서도 비슷한 지향점이 있는데, 나는 무계획을 계획한다.
계획하지 않았을 때 의외의 사건들이 찾아온다. 이 일들은 완벽하진 않지만
불운과 실패를, 때로는 행복 혹은 계획 해야 할 일을 주고 간다.
무계획은 생각보다 책임감 있게 불완전한 내 삶을 지지해 준다.

주희와는 연락이 끊긴지 오래다.
다들 '주희'라는 친구 한명쯤 있지 않은가?
내 친구 주희는 이름만큼이나 평범한 아이였다.
연필의 서걱거리는 소리가 좋다고 말하는 친구였는데.
나는 지금 연필로, 아쩌면 너로부터 시작되었을 삐뚤빼뚤한 내 삶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가끔 나 만큼이나 자랐을 주희의 소식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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